재활용 플라스틱의 탄소발자국
재활용 플라스틱의 탄소발자국 은 정말로 일반 플라스틱보다 적을까? 오늘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예를 가지고 과연 재활용 플라스틱의 탄소발자국이 일반 플라스틱보다 정말로 적은지 확인해보겠습니다.
먼저, 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합니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방법에는 기계적 재활용과 화학적 재활용이 있습니다.
기계적 재활용은 폐플라스틱을 씻고 잘게 부셔서 성형압출을 통해 새플라스틱으로 만드는, 쉽게 말해 물리적인 공정만을 거칩니다.
화학적 재활용은 이보다 더 고차원적인 공정이 필요한데, 바로 ‘해중합’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플라스틱을 아주 높은 온도로 가열해 화학적 결합을 다시 깨버리는 것이죠.
오늘 글에서는 먼저, 플라스틱의 기계적 재활용에 대해서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플라스틱의 기계적 재활용 공정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공정은 크게 업스트림, 코어 프로세스, 다운 스트림으로 구분됩니다.
업스트림이란 폐 플라스틱이 운송되어 들어오는 과정을 말하고, 다운스트림은 완성된 재활용 플라스틱이 고객사로 출고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즉 둘 다 “운송”인 거죠.
핵심은 바로 “코어 프로세스”인데요, 이 코어 프로세스는 다음 그림을 보며 이해하시면 아주 쉽습니다.
먼저 폐플라스틱이 공장에 들어오면, 파쇄 (shredding)를 해서 잘게 부숩니다. 그리고 풍력선별기 (wind sifter)를 통해 플라스틱과 그 중에 섞여 있는 금속물질들을 sorting 합니다. 분리된 플라스틱은 한 번 더 아주 곱게 그라인딩 한 후 세척과 건조를 거쳐 압출성형 하면 다시 플라스틱 레진의 형태로 출고되게 됩니다.
정말로 기계적인 (혹은 물리적인) 공정만을 거치죠?
재활용 플라스틱의 탄소발자국 을 계산하는 법
그렇다면, 이렇게 기계적으로 재활용된 플라스틱의 탄소발자국을 계산하는 방법은 과연 일반 플라스틱과 다를까요?
물론입니다!
지난 2021년 European Committee 산하의 Joint Research Center, JRC에서는 전통적인 플라스틱 “외에” 대안적인 모든 플라스틱, 예컨대 기계적 재활용된 플라스틱, 화학적 재활용된 플라스틱, 바이오 플라스틱 등의 탄소발자국을 계산하는 방법론을 정리해 발간하였습니다.
이 방법론에서 얘기하고 있는, 기계적 재활용 플라스틱의 탄소발자국 계산방법은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뭔가 어려운 얘기인 것 같지만, 하나씩 천천히 뜯어보면 아주 쉽고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답니다.
먼저 “Type of recycling technology”는 재활용 기술의 종류를 명확히 기재하라는 건데요, 여기서는 기계적 재활용 즉 “mechanical recycling”이 되겠죠.
두 번째 “Recycling efficiency”는 쉽게 말해, 폐플라스틱이 100% 들어갔으면 100%로, 폐플라스틱이 30%, virgin 플라스틱이 70% 비율로 섞였으면 Recycling Efficiency는 30%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재활용 공정에 사용된 에너지를 전기, 열, 기타 화석연료 (등유, 경유, 가스 등)으로 구분해서 계산해줍니다.
그리고 물 사용량과, 기타 투입된 부산물들 (세척과정에서 투입되는 세제나 계면활성제 등이 될 수 있겠죠)도 함께 계산에 넣어줍니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것이 “Production of rejects”인데요, 이건 즉 폐플라스틱을 100 넣었을 때 완제품인 재활용 플라스틱이 99 나온다고 하면, 탈락한 1을 일종의 ‘폐기물’의 개념으로서 계산에 넣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세척 공정에서 물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되는 폐수의 양도 계산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이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배출계수”라는 건데요, 배출계수는 쉽게 말해, 어떤 물질이 생산되기 위하여 배출된 온실가스의 양을 말합니다.
아래 표를 보면 좀 더 쉽게 이해가 될 겁니다.
위 표의 제일 첫번째 항목은 ‘수산화나트륨’입니다. 폐플라스틱의 세척에 쓰이는 물질이죠. 만일 1톤의 폐플라스틱을 세척하기 위해 수산화나트륨이 1kg 사용되었다면, 이 때 배출된 온실가스는 1.19kg이라는 겁니다.
두번째 항목인 ‘인산염’을 볼까요? 만약 1톤의 폐플라스틱을 세척하기 위해 인산염이 1kg 사용되었다면, 이 때 발생한 온실가스는 5.83kg입니다.
위 표에서 봤을 때, 폐플라스틱의 기계적 재활용 공정에서 가장 온실가스 발생량이 높은 투입물은 ‘인산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 표는 모두 사용량 1kg을 기준으로 정리해놓은 것이기 때문에, 만일 실제로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공정에서 수산화나트륨은 0.1kg, 인산염은 0.05kg, 계면활성제는 0.3kg, 이런 식으로 사용되었다면 배출계수를 실제 사용량으로 환산해서 계산하면 되는 겁니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죠. 우리가 이렇게 수많은 물질들의 배출계수 (온실가스 배출량)을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저 위의 표에서 인산염의 배출계수가 5.83이라는 것을 도대체 저는 어떻게 알아낸 걸까요?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로 “LCI DB”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일반인 또는 일반기업이 알기 어려운 어떤 “원료물질들”의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양을 미리 계산해서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놓은 것이죠.
(LCI DB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 블로그의 이전 글 “EU 탄소국경세와 제품 탄소발자국“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때문에 어떤 제품의 탄소발자국을 계산할 때는 이 데이터베이스를 뭘 사용하느냐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위 표의 제일 오른쪽 컬럼을 보시면 Ecoinvent 3.8 Dataset 이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바로 에코인벤트 3.8 버전의 LCI DB에서 가져온 배출계수라는 뜻이죠.
Location이 Global 이라는 것은 이 배출계수가 “전세계 평균값”이라는 뜻입니다.
물질의 종류에 따라서 어떤 나라의 특정 지역에서 생산되는 해당 물질의 배출계수가 별도로 수집되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생산되는 구리의 배출계수는 3,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생산되는 구리의 배출계수는 5.8 이런 식으로요. 이렇게 국가마다 배출계수가 달라지는 이유는 그 나라의 전력인프라, 교통망 등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수산화나트륨과 인산염 같은 물질은 “전세계 평균값”이 DB로 수집되어 있네요.
이렇게 어떤 제품을 생산하는 데에 투입되는 물질, 사용한 전력, 배출된 폐수 등의 배출계수를 모두 모아서 더하면 해당 제품의 탄소발자국이 계산되는 겁니다.
자, 배출계수까지 이해하셨다면, 이제 재활용 플라스틱의 탄소발자국이 일반 플라스틱보다 얼마나 적은지, 예시를 통해 확인해볼까요?
재활용 플라스틱의 탄소발자국
사실 이 글을 준비하며 최대한 가장 “플라스틱”스러운 (?) 제품의 예시를 가져와 보려 하였으나 생각처럼 잘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ㅠㅠ)
그래도 수치상 가장 확실하게 비교가 가능한 예시가 있어 가져와봤는데요, 바로 폴리아미드 레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나일론” 의 원료입니다.
나일론의 원료라고 해서 꼭 옷을 만드는 데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예시로 가져온 PA66은 열안정성, 내충격성, 내마모성이 좋아 자동차 부품, 산업용 밸브와 같은 금속 부품을 플라스틱으로 대체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소재인 것으로 알려져 있죠.
이탈리아에 소재한 Domo Chemical 이라는 회사는 매출 약 2조 5천 억 규모의 화학회사입니다. 이 회사에서 개발한 Econamid FL66이 바로 오늘 살펴볼 제품입니다.
제품 디테일을 보면, 100% 재활용 된 PA66 (나일론)이 97.5%, 카본블랙으로 만든 마스터배치가 1.8%, 그리고 기타 첨가물이 0.7% 로 구성되어 있는 제품입니다.
이 제품의 탄소발자국이 얼마나 되는지 볼까요?
이 제품의 탄소발자국은 2.45E-01 이라고 나와 있네요. 즉 2.45에서 소수점을 앞으로 한 칸 옮기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이 제품 1kg을 생산하는 데에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0.245kg 이 되네요.
그럼 이게 과연 많은 걸까요 적은 걸까요?
위의 Domo Chemical 이라는 회사에서도 이 수치가 적은 건지 많은 거지 확인하기 위해, virgin 플라스틱으로 만든 PA 66 (나일론) 제품의 탄소발자국을 별도로 계산해보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그래프상으로 봤을 때 일반 PA66, 그러니까 virgin 플라스틱으로 만든 나일론의 탄소발자국은 약 5.8kg 정도로 확인됩니다.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PA66의 탄소발자국은 0.245kg 이었죠.
무려 23배가 넘는 차이입니다.
플라스틱 재활용은 지구를 살릴 수 있다.
물론 위의 예시는 같은 회사의 같은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끼리 비교한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극명하게 그 차이가 나타나는 편이긴 합니다.
현실에서는 플라스틱 수거 업체도 모두 다르고, 이걸 가져가서 재활용하는 회사도 다 다르기 때문에 공정효율이나 운송 과정에서의 배출량 등등이 달라질 경우 virgin 제품과 재활용 제품의 탄소발자국 차이는 이보다 줄어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이 줄어든다고 해도 최소 10배 또는 15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바로 이것이 오늘의 결론입니다.
플라스틱 재활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게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다만 폐플라스틱을 수집하고 sorting 하는 과정에서, 재활용되지 못하고 탈락하는 비율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 현재의 가장 큰 난관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배달음식이 담겨 온 플라스틱을 깨끗이 설거지 해서 내놓는 것, 패트병의 뚜껑과 라벨을 꼭 떼어서 버리는 것, 이런 생활 속의 작은 실천이 폐플라스틱의 재활용율을 높이는 핵심적인 요소들이랍니다.
우리의 작은 실천이 지구를 살릴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에 조금 더 힘을 실어주기 위해 준비한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